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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ale-sans

Mindit 2016. 2. 21. 10:25

* 헤. 결국 어떻게든 되긴 한 모양인데.

* 시간선의 관측……. 이게 가능하다면 언젠가 시간 여행 같은 것도 가능해지겠지.

* 뭐. 그런 것까지 미리 생각할 필요는 없나.

* 그래서, 지금 우리의 시간선을 그래프로… 됐다.

* ………………………………………………………………………

* 어?




샌즈.

샌즈!!!!!!!!!!!!!!!!!!!!!!!!


화들짝 놀란 샌즈는 그의 형제를 돌아보았다.


* 뭐야, 파피루스. 놀랐네.

내가 형을 몇 번이나 불렀는지 알아?! 다섯 번이야, 다섯 번!!! 으으, 이 위대한 파피루스님을 그렇게 자꾸 무시할 거야?!!

* 아.


 다섯 번이나? 샌즈는 당황했지만 이내 둘러댈 말을 생각해냈다.


* 미안. 딴 생각을 좀 하느라.

딴 생각? 난 형이 눈을 뜬 채 자는 줄 알았다고.

* 오. 그치만 우린 눈꺼풀이 없는데.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니까 끝까지 좀 들어, 샌즈.


 그 딴 생각이 뭔지는 물어보지 않는다. 말을 돌리려고 시도했는데 나름 잘 된 모양이다.


* 헤. 알았어. 뼈에 새기도록 할 테니 말해봐.

샌즈!!!!!!!!!!!!!!!!!!!!!!!!!!!

* 왜? 재미있잖아.

하나도 재미 없어!

* 하지만 넌 웃고 있는데.

그건 내가 불쌍한 형을 위해서 억지 미소를 지은 거야!!!! 파피루스는 상냥하니까! 녜 헤 헤 헤!


어색함을 달래려는지 재미있는 수작을 부린다. 물론, 이 착해빠진 동생은 정말로 재미없는 농담에도 억지 미소를 지어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건 그냥 웃겨서 웃은 게 맞다.


… 어라. 무슨 이야기 중이었지?

* 뼈에 새긴다는 이야기?

맞아!! 형한테 할 말이 있었지.

형. 요즘 좀 이상한 거 알아?


 아뿔싸.


* 이가 상하다니, 해골로서는 큰 문제가 되겠군.

그만해!!!!!!!! 이가 상한다는 게 아니라 이상하다고! 시도때도없이 졸지 않나, 아무 일에도 의욕을 안 보이고…

* 나는 원래 그랬는데.

물론 원래부터 그랬지만… 아니, 형이 그렇다는 걸 아는데도 안 고친단 말야?!

어쨌든 형은 원래보다도 '더' 그런 느낌이야.

* 더?


 그렇게나 티가 났단 말인가?

 

더. 이러다간 내가 형을 일일히 챙겨줘야 할 판이라고!

* 뼈빠지게 고생하면서 말이지.

새애애애애앤즈!!!!!!!!!!

* 알았어, 알았어.

* 그치만 난 딱히 변한 게 없는데.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동생.

아냐. 형이 이상하게 변한지 벌써 10일 하고도 12시간 44분이 지났어.

형이 '시간선' 어쩌고 하면서 들어온 이후로 말이야.

좀 예전으로 돌아와 봐. 아니지, 예전보다도 의욕을 좀 더 내! 위대한 파피루스님의 형제가 게으름뱅이라는 소문이 퍼지면 비웃음을 당할 게 뻔해.

그러면 난 왕실 호위대가 되지 못할 수도 있어!!!

물론, 나는 이런 형을 두고도 왕실 호위대가 될 수 있도록 날마다 수련중이지만!

* 흠.

* 그것 참 '골' 때리는 일이겠군.

오, 맙소사. 샌즈!!!!!!!!

* 헤헤헤. 아니면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려나.

아, 됐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끝이야! 난 이제 언다인을 만나러 나가봐야 해.

둘이서 끝내주는 파스타를 만들 거거든! 기대해도 좋아. 녜 헤 헤 헤 헤 헤 헤 헤 헤!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 파피루스가 집을 뛰쳐나갔다. 어떻게든 이리저리 잘 빠져나간 모양이다. 닫혀버린 문을 보며, 샌즈는 상념에 잠겼다. 아스고어를 제외한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줄 알았는데. 그 털뭉치 임금에게는, 지상으로 나가려는 의지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단박에 간파당했다. 주위 괴물들에게 굉장히 세심한 신경을 기울이는 괴물이니만큼, 그 정도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렇지만 파피루스까지 샌즈의 변화를 눈치챈 것은 예상 밖이었다. 눈치 없고, 단순해 보이는 동생이지만 가끔 이런 점에서는 너무나도 예리해진다. 역시 형제라는 걸까. 그래, 정곡이 따로 없었다. 시간선을 관측한 이후로 샌즈는 어떤 일에도 의욕을 낼 수 없었다. 정확히는 시간선을 관측하고 그 의미를 해석한 이후로.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존재해서도 안 되는 막대한 불규칙성. 수많은 시간들이 한 데 뒤엉키고 흩어지고, 아슬아슬하게 현재를 이루고 있었다. 어떤 규칙도, 주기도, 법칙도 없다. 되감기되는 동영상처럼 시간이 거꾸로 흘렀다가, 다시 정상적으로 흐르기도 하고. 아예 끊어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가설을 하나 세울 수 있었다.

 자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뭔가가 존재한다.

 그렇게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개인의 의사에 따라 시간선이 변화한다고 해야만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막대한 불규칙성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 때마다 시간을 되감고,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관측된 거다.

 그 가설을 세우고 나니 안 그래도 게으름뱅이였던 자신이 모든 일에 의욕을 잃게 되었다.

 왕이 일곱 인간의 영혼을 모아 결계가 깨지고, 괴물들이 밖으로 나간다고 치자. 그러나 시간을 조종하는 존재가 그것을 용납치 않는다면? 모든 괴물들은 자신이 지상을 봤다는 사실도 잊은 채 다시 땅 밑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소중한 친구를 사귄다? 시간이 되돌아가면 다시 남남이 될 거다. 무자비한 탈력감이었다.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삶에는 크나큰 굴곡이 없다고 느끼겠지.

 끔찍한 일이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시간선을 되돌리는 존재와 언젠가 마주하게 된다면, 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만일 그 존재가 괴물들을 증오하는 인간이고, 모든 괴물들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미친 놈이라면? 헤.

 그런 존재 앞에서 샌즈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그야말로 뼈저리게 아픈 사실이다. 스스로 생각해낸 농담에 한 번 웃은 샌즈는 몸을 일으켰다.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경비 초소를 지켜야 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파피루스의 걱정도 어느 정도는 덜어주어야 하고.

 만약 내게 그런 힘이 있다면, 파피루스가 더 나은 파스타를 만들 수 있게 돕는 데나 쓰겠어. 너처럼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세계를 조작하기보다는. 모든 게 네 뜻대로 되는 세상이라는 건 너한테도 재미없지 않아? 들릴 리 없는 비난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샌즈는 문을 나섰다.


-


* 헤.

* 그건 나를 마흔 일곱 번 죽인 것 같은 표정인데.

* 내가 어지간히도 너 같은 미친 놈의 마음에 든 모양이야. 그렇지?

* 아주 재미있는 모양이네. 내 예상과는 달리.

* … 헤. 그럼 시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