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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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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

Mindit 2016. 1. 28. 19:00

"시작하기 전에, 서로 다치면 안 되는 건 알죠?"

"모를 리가 있나?" 

 주위를 둘러본 에슈티어는 천천히 한 곳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여기로."

 포네스티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겠지. 위치의 선점이라는 건 공간이동 능력자에게는 그닥 신경쓰이는 문제는 아닐 거다. 전투태세에 들어가려는 에슈티어를 보고, 폰이 입을 열었다.

"싸우기 전에 알아놓아야 할 게 있어요."

"싸움에 그런 건 없어."

"… 10년 후의 당신은 알고 싸운 거니까 들어봐요. 내 공간이동 능력은, 어릴 땐 몰랐지만 어느 정도의 제약이 있어요. 첫째로,"

"말하지 마."

 말을 자르고 들어오는 에슈티어에게 그녀는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유리한 정본데 들어두지 않을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시선으로 묻는 말에 음성으로 답한다.

"내가 모르는 편이 공평해."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요?"

"당연하지.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른 채 싸우는 거다."

 포네스티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한다. 이미 그녀는 에슈티어의 전투 스타일을 대략 알고 있다. 고작해야 두 번의 대련이지만 그럭저럭 익힐 수 있던 정보가 있으니까. 가까워지면 오른손부터 나온다는 점이나, 선공을 좋아하지 않지만 소강 상태를 깨뜨리기 위한 선공은 자주 취한다는 점, 들어오는 공격에 맞춰 역으로 제압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 반면 룩에게는 폰에 대한 정보가 조금도 없다. 아무리 봐도 불공평한데. 조금 더 생각했지만 이내 그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0년이다. 포네스티가 상대했던 에슈티어의 모든 기술들이 10년 젊은 에슈티어의 몸에서 뿜어져나올 것이다. 서른 다섯. 늙기 시작했지만 힘으로는 전성기일 나이이다. 반응속도, 기술의 정교함, 밀어붙이는 힘. 10년 후와는 많은 부분이 다르겠지. 45세의 에슈티어만을 알고 있는 폰에게 10년의 미묘한 차이는 생각보다 큰 족쇄로 작용할 거다.

 같은 주먹이 날아와도 빠르다. 같은 붙잡기를 당해도 정교하다. 같은 인물이지만 더 강한 인물. 적응이 쉽지는 않을 테다.

"뭐, 좋아요. 맞는 말 같네."

"시작하지."

"그래요. 시작!"

 시작이라는 말이 떨어졌지만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폰과 룩, 양쪽 모두 가만히 기다렸다. 에슈티어는 약간 놀랐지만 이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보통은 지금 상황에서 순간이동을 이용해 선공을 취하는 것이 당연하다. 10년 뒤의 에슈티어도 그것을 알고 있었겠지. 당연히 지금 그와 똑같은 대책을 생각해냈을 거다. 360도 전방위의 경계. 시야에서 포네스티가 사라지는 순간 물러나며 역습한다. 그녀도 같은 방식에 여러 번 당해 봤겠지. 그렇다면 선공을 이쪽에 맡긴다는 걸까. 시선만 교환하며 수 초가 흘렀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서서히 조여올 즈음. 먼저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게도 포네스티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의미하는 바는 하나. 앞으로 뛰며 몸을 홱 돌렸다. 팔을 십자로 교차해 날아드는 손날을 막아낸다. 공중에서 받아낸 공격. 충격 역시 허공으로 흩뿌려지고, 바닥에 발을 디딘다. 하이킥. 동작이 크다. 오른팔로 쳐낸다. 시야에서 증발. 다시 오른쪽, 팔꿈치. 미숙해. 마찬가지로 오른쪽 팔꿈치를 써서 누르듯이 쳐냈다. 살짝 뛰면서 몸의 방향을 바꿔 다시 마주본다. 이번에는 로우킥. 맞아주면 안 된다. 뒤로 잽싸게 두 번 뛰어 물러난다. 제기랄, 또 뒤냐. 지금은 방법이 없는데. 강제로 몸의 균형을 오른쪽에 실어 넘어진다. 위로 스쳐지나가는 강렬한 발차기. 튕겨나듯 일어나며 무릎을 날린다. 드디어 회피한다. 이쪽의 공격은 죄다 순간이동으로 피하더니?

 제약. 연달아 순간이동하는 횟수에는 한계가 있다.

 제약이 있다는 걸 들어버린 게 결국 정보의 불공평함을 초래한다. 애초에 포네스티의 전투스타일부터가 에슈티어에게 배운 것. 순간이동을 제하고는 전부 본인 기술의 열화판을 상대하는 셈이다. 힘, 기교, 속도. 지나치게 무르다. 잘 배웠지만, 고작해야 열 일곱 소녀.

 시도해오는 뺨 클린치. 이쪽에서는 다칠까봐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었더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온다. 무르다. 왼손만 짧고 힘있게 쳐내고, 상체를 낮추며 겨드랑이를 밀어올리듯 붙잡는다. 당황하는 빛이 보인다. 그야 레슬링식의 기술은 당해본 적이 없겠지. 10년 후라면 힘이 모자란다. 그대로 번쩍 들어올리며 땅을 향해 내리찍는다. 사라지는 중량감. 예상했다. 다시 뒤.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몸을 더 빠르게 내리꽂으며 아예 바닥에 스스로를 내팽개친다. 낙법. 곡예사처럼 손을 땅에 짚고 몸을 풍차처럼 돌리며 일어난다. 파악한 게 있다면, 뒤로 돌아올 때는 항상 바닥을 바라본다는 것. 에슈티어를 뚫고 뒤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살짝 돌아서 뒤로 이동한다.

 제약. 순간이동은 시선이 닿는 곳에 한정하여 성립한다.

 일어나자마자 무릎으로 찍어오기. 도끼와 같은 중량감으로 찍어낸다. 좋은 움직임이지만 흘려낸다. 경험 차이. 어쩔 수 없는 룩의 이점이고 이를 최대한 이용해야만 한다. 폰이 자신의 이점인 초능력을 최선의 방법으로 이용하듯이. 다만, 그래.

 포네스티의 공간이동은 지나치게 최선이다.

 왼주먹으로 얼굴을 올려친다. 고개를 젖혀 피해내고는 마찬가지로 왼손 어퍼컷. 견제하듯 왼손을 날리는 버릇은 룩, 자신의 버릇이기도 하다. 잠깐이지만 거울과 싸우는 기분이다. 하지만 볼 건 다 봤다, 는 느낌이다. 쓰러뜨릴 방법은 결정했고, 사전 준비도 이미 끝냈다. 미끼를 물기만 하면 끝. 계속해서 주먹을 날리지만 쳐내지고, 막히고, 역으로 맞을 뻔 했다. 쉽지 않다. 미끼의 존재조차도 모를텐데, 왜 아직까지도 정면 승부를 고집하는 거지?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한 주먹으로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 수 읽기와 흘려내기는 에슈티어 자신의 전공 아닌가. 포네스티가 미숙할 리 없다. 그렇다면 팔꿈치. 이미 몇 번의 공방으로 초근접거리에 들어왔다. 도끼를 휘두르기에 충분한 사정거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려찍는다. 몸을 뒤로 홱 젖히며 피한다. 아주 조금 남았다. 연이은 뺨 클린치. 피할 수 없다. 클린치가 확정. 그렇게 된다면 폰의 패배도 확정이다.

 이 순간만을 위해 기다린 거다. 시선을 내려 에슈티어의 뒤를 본다. 벌어지는 순간이동. 자세는 아주 가까이에서 팔꿈치로 에슈티어를 밀어치기 직전의 자세. 그런데,

"체크메이트."

 바로 턱밑까지 와닿아있는 에슈티어의 팔꿈치를 본다. 읽혔다. 완전히. 공격하지 못해서 여기서 멈춘 것이 아니다.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규칙 때문에 멈춘 거겠지. 하지만 이 공격, 맞았다면 순간이동을 할 정신을 차리기 전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겠지.

 침을 삼킨다. 에슈티어는 팔꿈치를 뒤로 올린 자세 그대로 포네스티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시선이 가는 곳으로 움직여. 항상 최적의 장소에서 최적의 공격을 하기 위해서만 움직이지. 그거 두 개만 안다면 쉬워."

 포네스티가 어디로 움직일지 다 아는 상태였다는 거다. 그럼 클린치는 순간이동을 유도하기 위한 미끼였다는 건가. 헛웃음이 새어나온다. 뒤로 두 발 물러섰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미숙함. 왜 10년 후에는 이걸 못 했을까? 아마 순간이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치는 게 무리였겠지. 10년 후의 에슈티어는 힘도, 기교도, 반응속도도 지금과는 다르니까.

"… 하, 뭐. 그래요. 졌네."

"나쁘진 않군."

 룩은 제 정장을 털고는,

"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생각은 이제 접어. 놀이는 끝이다."

 그리 말하고 공터를 나섰다.

 재수 없어. 짧게 속으로 읊조리고는, 포네스티는 그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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